고도미 Ko Domi
“땅을 딛다”
폭염이 내리던 한여름에 찾은 평창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이질적인 시공간을 선물해 주었다. 여느 해보다 뜨거운 기온을 자랑하던 이 시기에 맞지 않는 서늘한 산바람과 원근을 흐릿하게 감싸는 구름과 안개, 끝도 알 새 없이 굽이굽이 흐르는 원경의 산등성이가 마치 이 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있는 것과 같았다. 풍경, 사물, 사람···. 항상 무엇을 바라보든 그 안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 오던 나에게 가장 좋은 지역이 아니었을까.
“땅을 보다”
평소 문명과 맞닿아 있는 기법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반대편의 ‘자연 그 자체’를 갈망하는 마음이 든다. 허나 자연을 표상적으로 복사하기보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매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나름의 해체주의를 묘법으로 삼고 작업하게 되는 것 같다. 작업에서는 귀얄의 나무 지푸라기 결을 살려 이전보다 러프한 느낌을 내고 화이트박스에 표구하여 적나라하고 심플한 대비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로 하여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자연을 더더욱 부각하되 과하지 않은 느낌으로 우리의 공간에 자리할 수 있는 작품으로 구상하고 제작했다. 마치 내가 평창에서 보았던 운무의 저편과 안쪽을 함께 그려낸 한 폭의 풍경화처럼.
“뒹구는 돌”
흙 한 줌에는 생각 외로 끝을 알 수 없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감상을 얻었다. 체를 거르면서 나오는 토양의 부산물은 항상 나의 작업에서 열외되어 온 우주였다. 나무 지푸라기는 고사하고, 하물며 그 안에서 우글거리는 개미까지. 그런데 그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 작은 사회가 있고 수많은 개체가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생각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흙 한 줌일지도 모른다. 그 흙 한 줌 안을 위에서 관망하는 안개만이 우리 인간 개체가 생각하고 있는 진정한 ‘완결’을 알고 있을 테지.
김다현 Kim Dahyun
“땅을 딛다”
비에 젖어 짙어진 땅. 세상은 희뿌옇지만, 모든 것들이 그 안에서 반짝였다. 늘상 별다른 생각 없이 가던 여행과는 다르게 차를 타고 달릴 때나 길거리를 거닐며, 기대하던 색의 토양을 찾고 영상에 담고픈 정경을 살폈다. 이틀간의 폭우 속, 불어난 강물에 잠겨 카메라에 담지 못한 곳곳이 아쉬웠지만 그 덕분에 그냥 지나쳤던 장소를 되돌아보고 멀리서 보던 풍경들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기록하기 위한 대상들을 찾고 채집하며 저장하는 순간들이 낯설어 어색하면서도 즐거운 감정이 더 컸다.
“땅을 보다”
기존의 작업 형식에 갇혀, 며칠간의 기행을 담고 묘사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한 고민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비에 잠긴 땅과 흘러가는 빗물, 반짝이는 나뭇잎과 지붕들. 습관처럼 묘사하며 표현하려 했지만 내 안에 기억된 이틀간의 안동을 축약할 수 없었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보낸 여러 날의 고민 후, 눈에 들어온 것은 추상이었고 한 개체가 아닌 내가 느낀 감정과 기억을 추상으로 덧붙여 그려냈다.
“뒹구는 돌”
백지 위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집착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위한 작업을 고민하며 내 안에 있는 기억들을 나만의 언어로 그릴 수 있는 방식을 배웠다.
김도헌 Kim Doheon
“땅을 딛다”
영월. 소용돌이에 침식된 바위.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 5억 년의 시간이 쌓인 단층과 물안개 속 이끼 계곡을 걸었다. 이틀간 자연만이 갖고 있는 힘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영월의 정서가 그 누구보다 나와 가까이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언어를 빌려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땅의 고요한 아름다움만 전할 수 있다면.
“땅을 보다”
도예가의 작업에는 이미 재료와 기법이 상정된 경우가 많다. 작업에서 재료가 바뀐다면, 전혀 써보지 못한 재료로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 가장 많이 던져본 질문이었다. 땅을 이해하기 위해 진행했던 많은 실험 속에서 땅속의 유기물과 철분이 중력에 따라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상에 매료되었다. 자연을 묘사하고 싶지 않았고, 힘과 구조를 차용하고 싶었다. 기존의 작업처럼 벽에 거는 것보다는 보는 사람들이 땅을 상상하게 만들고 싶었다. 땅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작은 도판 위 유약의 움직임을 따라 그 힘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뒹구는 돌”
1년에 걸친 큰 프로젝트였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평생 가볼 일도 없는 곳에 가서 흙을 캐고 연구하다니. 돌이켜보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기행을 통해 배운 것은 끝까지 걸으면 다 해결이 된다는 것. 폭우가 내리고 지형이 바뀌고 어떤 위기가 와도 결국 나아 간다는 것, 그 안에 모든 답이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스스로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성장했음을 실감한다. 재료-물질은 결국 땅. 땅을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고 조금 더 땅을 닮은 작가가 되고 싶다. 요즘은 ‘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언어들이 머릿속에 가득해 답답하지만, 아직 모르기에 걸어가는 길이 즐겁다.
김동인 Kim Dongin
“땅을 딛다”
경주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희미하게 느낌만 남아있는 경주가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로 다가온다는 것이, 마치 처음 와보는 장소처럼 다가왔다. 약간의 낯섦이 되려 설렘으로 느껴졌다. 불국사의 연못 위로 건넌 다리와 오래된 나무에 기대어 삶을 빚지고 있는 이끼들, 사라진 세 마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 마리의 다보탑 돌사자. 그리고 고목이 뿌리를 내린 고분은 무덤이 아니라 동산처럼 느껴졌다. 타지에서 느끼는 어색함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 방문한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경주에서 찾기로 계획한 흙을 발견했던 순간이 선명하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비를 머금은 대지는 채도가 높았다. 흐리지만 선명한 날씨였다.
“땅을 보다”
작업의 주제나 방향성 그리고 제작 과정이 텍스트로 먼저 정리가 되어야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라 전시의 제목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서 주제를 어떻게 해석할지, 지역의 흙에 어떤 형태와 쓸모를 부여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기존 작업인 <결함 series>는 시라는 텍스트를 은유의 구조를 통해 결과물로 도출하는데, 이번 작업은 전시 제목에 대한 문답의 구조로 작업을 전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지역의 흙으로 실험을 진행하며 지역 흙을 혼합한 슬립을 사용하였다. 지역마다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다른 요소가 보였다.
“뒹구는 돌”
다양한 대상과 재료에 대해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꼭 어떠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흙과 돌은 가까운 장소 곳곳에 있는 것처럼 내가 아직 눈길을 주지 않은 것들이 곳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내가 아직 이름을 불러주지 않은 대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김현영 Kim Hyeonyoung
“땅을 딛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출저가 불분명한 시대이다. 재화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물을 소비하면서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에게 당도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종종 그런 생략된 정보들을 알고 싶어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였지만, 다루어 온 재료들을 도재상에서 구매하여 사용해 왔다. 그것은 편하면서도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를 불편하게 했다. 기행을 떠나 그곳에서 캐낸 태토의 색감과 점성을 확인하는 일은 이론으로만 알던 것들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어릴 때부터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오랜 친구의 과거를 아는 것처럼 내가 다루는 흙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다주는 시간이었다.
“땅을 보다”
작년부터 절 구경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기행 탓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절을 가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부모님의 예배하시던 모습을 따라 합장을 하고 예배를 드렸다. 누군가를 기리는 사물들로 가득한 절이라는 공간은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물을 만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다. 좀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작품을 만들어 내는 나의 행위에 대한 것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것을 기리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일로써, 순간을 사는 인간을 위로하는 태도 또한 겸하고 있다. 요즘엔 작업을 하게 되는 올바른 순서에 대해 생각하며 지낸다. 일상을 보내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순수한 창조 욕구를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뒹구는 돌”
기행을 통해 다녀오게 된 지방의 풍경과 그곳에서 삶을 꾸려오신 분들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도심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을 통한 계절 감각들 -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 감나무잎의 다채로운 색감, 시야를 가리지 않는 넓은 평야와 황금빛의 논과 같은 것들로 눈과 마음이 채워졌다. 다시금,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운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깨닫는 시간은 스스로 옳다고 행해왔던 맹목적인 시각에 대해서 겸허한 태도를 가지게 했다.
심다은 Sim Daeun
“땅을 딛다”
낯설고도 익숙한 땅을 밟으며 남겨두었던 흔적들.
(2023년 4월 30일) 학교에서 점토수업을 하는 날이면 뒷산을 오르던 아이들. 작은 발자국 옹기종기 나 있던 거리를 따라 걸어 간다. 잣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과 그 아래에서 노동하는 인간들. 바삭한 미나리전과 구수-한 지평막걸리.
(2023년 5월 4일) 도로를 내기 위해 깍아낸 산턱을 저벅저벅 오른다. 발가 벗겨진 산, 말라 바스러지는 땅 위에서 기어이 피어난 잡초. 손에 힘을 주면 부스러지는 붉은 덩어리들은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단단한 돌이 되었을까. 땅 위에 무엇이 있는가. 그림자를 보면 알 수 있나.
(2023년 6월 3일) 자욱한 풀숲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난 흑색의 바위덩이. 비릿한 강냄새. 해발 400미터에서 바위 산맥을 가로지르며 산 속에 둘러싸인 마을로 들어간다. 예미리.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는 거친 숨소리마저 가려준다.
(2023년 7월 9일) 무언가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땅을 보다”
감히 땅을 빌려 재료로 썼다. 누군가의 터전이었던가, 작업실로 옮겨진 흙과 점토에서는 새싹이 피어나고 그 밖으로 아주 작은 벌레들이 자주 기어다녔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내어 준 땅에 무엇이 남겨져 있을까. 떠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지는 않을까. 혹은 그들이 이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간 걸어온 땅들의 흙을 모아가 한데 뭉친다. 그 모두를 품어 내는 검붉은 점토. 소란스러운 머리를 계속해서 비워냈다. 비워내고 비워내다가 툭하고 튀어나온 작은 돌멩이.
“뒹구는 돌”
온 피부를 태워버린 봄과 여름을 모두와 함께 보냈다. 아마 그 땅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았겠지. 두려움을 덜고 싶었다. 애처로운 마음을 무심히도 툭 툭.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묻었으니 그거면 되겠지. 조금씩 나아간다면 그걸로 됐다.
1. Field Trip↗
2. Wild Clay Research A↗
Wild Clay Research B↗
3. Process↗
4. Artwork↗
5. Interview
전시 전경↗
“땅을 딛다”
폭염이 내리던 한여름에 찾은 평창은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이질적인 시공간을 선물해 주었다. 여느 해보다 뜨거운 기온을 자랑하던 이 시기에 맞지 않는 서늘한 산바람과 원근을 흐릿하게 감싸는 구름과 안개, 끝도 알 새 없이 굽이굽이 흐르는 원경의 산등성이가 마치 이 세상과 저세상 사이에 있는 것과 같았다. 풍경, 사물, 사람···. 항상 무엇을 바라보든 그 안의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 오던 나에게 가장 좋은 지역이 아니었을까.
“땅을 보다”
평소 문명과 맞닿아 있는 기법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반대편의 ‘자연 그 자체’를 갈망하는 마음이 든다. 허나 자연을 표상적으로 복사하기보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매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나름의 해체주의를 묘법으로 삼고 작업하게 되는 것 같다. 작업에서는 귀얄의 나무 지푸라기 결을 살려 이전보다 러프한 느낌을 내고 화이트박스에 표구하여 적나라하고 심플한 대비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로 하여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자연을 더더욱 부각하되 과하지 않은 느낌으로 우리의 공간에 자리할 수 있는 작품으로 구상하고 제작했다. 마치 내가 평창에서 보았던 운무의 저편과 안쪽을 함께 그려낸 한 폭의 풍경화처럼.
“뒹구는 돌”
흙 한 줌에는 생각 외로 끝을 알 수 없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감상을 얻었다. 체를 거르면서 나오는 토양의 부산물은 항상 나의 작업에서 열외되어 온 우주였다. 나무 지푸라기는 고사하고, 하물며 그 안에서 우글거리는 개미까지. 그런데 그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 작은 사회가 있고 수많은 개체가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생각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흙 한 줌일지도 모른다. 그 흙 한 줌 안을 위에서 관망하는 안개만이 우리 인간 개체가 생각하고 있는 진정한 ‘완결’을 알고 있을 테지.
김다현 Kim Dahyun
“땅을 딛다”
비에 젖어 짙어진 땅. 세상은 희뿌옇지만, 모든 것들이 그 안에서 반짝였다. 늘상 별다른 생각 없이 가던 여행과는 다르게 차를 타고 달릴 때나 길거리를 거닐며, 기대하던 색의 토양을 찾고 영상에 담고픈 정경을 살폈다. 이틀간의 폭우 속, 불어난 강물에 잠겨 카메라에 담지 못한 곳곳이 아쉬웠지만 그 덕분에 그냥 지나쳤던 장소를 되돌아보고 멀리서 보던 풍경들을 가까이 들여다봤다. 기록하기 위한 대상들을 찾고 채집하며 저장하는 순간들이 낯설어 어색하면서도 즐거운 감정이 더 컸다.
“땅을 보다”
기존의 작업 형식에 갇혀, 며칠간의 기행을 담고 묘사할 수 있는 대상을 찾기 위한 고민이 꽤 오래 지속되었다. 비에 잠긴 땅과 흘러가는 빗물, 반짝이는 나뭇잎과 지붕들. 습관처럼 묘사하며 표현하려 했지만 내 안에 기억된 이틀간의 안동을 축약할 수 없었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보낸 여러 날의 고민 후, 눈에 들어온 것은 추상이었고 한 개체가 아닌 내가 느낀 감정과 기억을 추상으로 덧붙여 그려냈다.
“뒹구는 돌”
백지 위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집착하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위한 작업을 고민하며 내 안에 있는 기억들을 나만의 언어로 그릴 수 있는 방식을 배웠다.
김도헌 Kim Doheon
“땅을 딛다”
영월. 소용돌이에 침식된 바위. 종유석이 가득한 동굴. 5억 년의 시간이 쌓인 단층과 물안개 속 이끼 계곡을 걸었다. 이틀간 자연만이 갖고 있는 힘과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영월의 정서가 그 누구보다 나와 가까이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언어를 빌려 나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땅의 고요한 아름다움만 전할 수 있다면.
“땅을 보다”
도예가의 작업에는 이미 재료와 기법이 상정된 경우가 많다. 작업에서 재료가 바뀐다면, 전혀 써보지 못한 재료로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스로 가장 많이 던져본 질문이었다. 땅을 이해하기 위해 진행했던 많은 실험 속에서 땅속의 유기물과 철분이 중력에 따라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상에 매료되었다. 자연을 묘사하고 싶지 않았고, 힘과 구조를 차용하고 싶었다. 기존의 작업처럼 벽에 거는 것보다는 보는 사람들이 땅을 상상하게 만들고 싶었다. 땅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작은 도판 위 유약의 움직임을 따라 그 힘을 느껴보기를 바란다.
“뒹구는 돌”
1년에 걸친 큰 프로젝트였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평생 가볼 일도 없는 곳에 가서 흙을 캐고 연구하다니. 돌이켜보면 정말 놀라운 경험이다. 기행을 통해 배운 것은 끝까지 걸으면 다 해결이 된다는 것. 폭우가 내리고 지형이 바뀌고 어떤 위기가 와도 결국 나아 간다는 것, 그 안에 모든 답이 있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스스로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성장했음을 실감한다. 재료-물질은 결국 땅. 땅을 수단으로 바라보지 않고 조금 더 땅을 닮은 작가가 되고 싶다. 요즘은 ‘상’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언어들이 머릿속에 가득해 답답하지만, 아직 모르기에 걸어가는 길이 즐겁다.
김동인 Kim Dongin
“땅을 딛다”
경주는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희미하게 느낌만 남아있는 경주가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로 다가온다는 것이, 마치 처음 와보는 장소처럼 다가왔다. 약간의 낯섦이 되려 설렘으로 느껴졌다. 불국사의 연못 위로 건넌 다리와 오래된 나무에 기대어 삶을 빚지고 있는 이끼들, 사라진 세 마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 마리의 다보탑 돌사자. 그리고 고목이 뿌리를 내린 고분은 무덤이 아니라 동산처럼 느껴졌다. 타지에서 느끼는 어색함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 방문한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경주에서 찾기로 계획한 흙을 발견했던 순간이 선명하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비를 머금은 대지는 채도가 높았다. 흐리지만 선명한 날씨였다.
“땅을 보다”
작업의 주제나 방향성 그리고 제작 과정이 텍스트로 먼저 정리가 되어야 작업에 들어가는 편이라 전시의 제목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서 주제를 어떻게 해석할지, 지역의 흙에 어떤 형태와 쓸모를 부여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기존 작업인 <결함 series>는 시라는 텍스트를 은유의 구조를 통해 결과물로 도출하는데, 이번 작업은 전시 제목에 대한 문답의 구조로 작업을 전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지역의 흙으로 실험을 진행하며 지역 흙을 혼합한 슬립을 사용하였다. 지역마다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다른 요소가 보였다.
“뒹구는 돌”
다양한 대상과 재료에 대해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꼭 어떠한 장소에 가지 않아도, 흙과 돌은 가까운 장소 곳곳에 있는 것처럼 내가 아직 눈길을 주지 않은 것들이 곳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내가 아직 이름을 불러주지 않은 대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김현영 Kim Hyeonyoung
“땅을 딛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출저가 불분명한 시대이다. 재화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물을 소비하면서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에게 당도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종종 그런 생략된 정보들을 알고 싶어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였지만, 다루어 온 재료들을 도재상에서 구매하여 사용해 왔다. 그것은 편하면서도 한편으론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를 불편하게 했다. 기행을 떠나 그곳에서 캐낸 태토의 색감과 점성을 확인하는 일은 이론으로만 알던 것들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은 나에게 어릴 때부터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오랜 친구의 과거를 아는 것처럼 내가 다루는 흙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다주는 시간이었다.
“땅을 보다”
작년부터 절 구경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기행 탓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씩은 절을 가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봐왔던 부모님의 예배하시던 모습을 따라 합장을 하고 예배를 드렸다. 누군가를 기리는 사물들로 가득한 절이라는 공간은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물을 만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다. 좀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작품을 만들어 내는 나의 행위에 대한 것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것을 기리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일로써, 순간을 사는 인간을 위로하는 태도 또한 겸하고 있다. 요즘엔 작업을 하게 되는 올바른 순서에 대해 생각하며 지낸다. 일상을 보내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 순수한 창조 욕구를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뒹구는 돌”
기행을 통해 다녀오게 된 지방의 풍경과 그곳에서 삶을 꾸려오신 분들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도심에서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을 통한 계절 감각들 -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 감나무잎의 다채로운 색감, 시야를 가리지 않는 넓은 평야와 황금빛의 논과 같은 것들로 눈과 마음이 채워졌다. 다시금,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운 것들로 채워져 있는지 깨닫는 시간은 스스로 옳다고 행해왔던 맹목적인 시각에 대해서 겸허한 태도를 가지게 했다.
심다은 Sim Daeun
“땅을 딛다”
낯설고도 익숙한 땅을 밟으며 남겨두었던 흔적들.
(2023년 4월 30일) 학교에서 점토수업을 하는 날이면 뒷산을 오르던 아이들. 작은 발자국 옹기종기 나 있던 거리를 따라 걸어 간다. 잣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과 그 아래에서 노동하는 인간들. 바삭한 미나리전과 구수-한 지평막걸리.
(2023년 5월 4일) 도로를 내기 위해 깍아낸 산턱을 저벅저벅 오른다. 발가 벗겨진 산, 말라 바스러지는 땅 위에서 기어이 피어난 잡초. 손에 힘을 주면 부스러지는 붉은 덩어리들은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단단한 돌이 되었을까. 땅 위에 무엇이 있는가. 그림자를 보면 알 수 있나.
(2023년 6월 3일) 자욱한 풀숲 사이로 드문드문 드러난 흑색의 바위덩이. 비릿한 강냄새. 해발 400미터에서 바위 산맥을 가로지르며 산 속에 둘러싸인 마을로 들어간다. 예미리.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는 거친 숨소리마저 가려준다.
(2023년 7월 9일) 무언가를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땅을 보다”
감히 땅을 빌려 재료로 썼다. 누군가의 터전이었던가, 작업실로 옮겨진 흙과 점토에서는 새싹이 피어나고 그 밖으로 아주 작은 벌레들이 자주 기어다녔다. 우리 모두가 마음을 내어 준 땅에 무엇이 남겨져 있을까. 떠나간 사람들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있지는 않을까. 혹은 그들이 이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간 걸어온 땅들의 흙을 모아가 한데 뭉친다. 그 모두를 품어 내는 검붉은 점토. 소란스러운 머리를 계속해서 비워냈다. 비워내고 비워내다가 툭하고 튀어나온 작은 돌멩이.
“뒹구는 돌”
온 피부를 태워버린 봄과 여름을 모두와 함께 보냈다. 아마 그 땅에는 우리의 흔적이 남았겠지. 두려움을 덜고 싶었다. 애처로운 마음을 무심히도 툭 툭. 하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묻었으니 그거면 되겠지. 조금씩 나아간다면 그걸로 됐다.
1. Field Trip↗
2. Wild Clay Research A↗
Wild Clay Research B↗
3. Process↗
4. Artwork↗
5. Interview
전시 전경↗